한 나라가 세계대전 기간 다른 국가의 국민을 박해했던 일을 사과했다. 가해 국가 정부의 자문 기구는 피해자의 후손들을 향해 “고통받은 여러분의 조상에게 사죄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고 사과 요구 운동을 해왔던 유족은 “미래 세대를 위해 이 역사를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기억까지 담긴 해당 사례의 주인공은 브라질과 일본이다. 사과한 쪽이 브라질, 사과받은 나라는 일본이다.
1차 대전 후 경제난에 시달리던 일본 정부는 남미 이민을 장려했다. 브라질로 건너간 일본인들은 2차 대전 당시 현지에서 적성외국인(enemy aliens), 즉 적국 출신자로 불리며 차별에 시달렸다. 수천 명이 ‘24시간 이내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일왕 사진 짓밟기를 거부해 수용소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이들도 있었다. 불 끄고 몰래 일본말을 배웠다는 사연에서는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이 겪었던 수난이 겹친다.
브라질이 지난 역사에 고개를 숙인 올 7월, 일본은 한국과 약속했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한국이 동의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를 매년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행사 명칭에 ‘감사’라는 취지의 표현을 넣으려 했고 정부 대표로 온 인사는 추도사에서 ‘강제 노동’이라는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렵사리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가 재개되고 관계를 회복한 지금 다시 ‘싸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 이런 상황은 바로잡아야 한다. 추도식은 끝났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 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전시에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유감 표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브라질 이민자들의 일본 귀환 업무 담당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들(사과 운동을 해온 이들)은 ‘같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조선인 희생자의 유족들도 그러할 것이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던 누군가를 비롯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양국 책임자들이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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