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원 동결 약속에도 꿈쩍하지 않던 의대생들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집단 휴학 불허와 미등록시 제적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각 의대가 내놓은 복귀 시한이 재깍재깍 다가오는 가운데 학생회를 비롯한 선배들이 휴학 투쟁 원칙을 압박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리는 모양새다. 특히 예과 학생들은 제적 시 구제받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 더욱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각 의과대학 커뮤니티에는 전날을 기점으로 ‘등록 휴학’을 옹호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군휴학자마저 도망자로 낙인찍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학생들은 “학생회는 법률 자문 하나라도 받고 학생들에게 미등록하라고 하는 건가”라는 걱정부터 “필수의료패키지와 처우라는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대학 생활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는 호소까지 쌓여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는 모양새다.
미등록 휴학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학생회에 대한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학생회의 경우 실제 제적 가능성이 낮다며 강경 대응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제적 위협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제적이 위법이라는 말만 하지 말고 진짜 제적됐을 때 소송비는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러다가 제적당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선배들은 면허라도 있지 너무 지친다”고 적었다.
가장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건 제적 시 마땅히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예과 학생들이다. 제적 후 재입학할 수 있는 학칙이 있지만 정원의 결원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아 내년도 정원이 5058명으로 유지될 경우 예과 1학년으로 재입학을 해야 하는 24 ·25학번이 돌아올 자리는 사실상 없다. 실제 연세대 의대 측도 이날 예과 24학번에 “24학번은 제적 시 재입학이 절대 불가능하니 등록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라”고 경고했다.
타 주요 의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대 의대 한 학생은 “휴학할 때까지 실명 투표를 시킨다”며 “학부생들이 휴학을 하지 않고 진급하면 전공의들의 자리가 사라질까봐 선배들이 외압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혹시나 다시 시험을 치면 의대를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 지방 소재 의대 24학번 학생은 “그래도 이제는 학교를 가야 하지 않냐 이런 분위기이기는 하다”며 “이번에 기숙사에 들어온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뚜렷한 복귀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날 찾은 한양대 의예과 수업에는 여전히 5명 안팎의 학생들만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의예과 수업이 진행되는 연세대 의대 종합관에도 적막만이 흘렀다. 당초 시간표대로라면 오프라인에서 열렸어야 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21일 연세대·고려대를 시작으로 31일까지 각 대학들이 제시한 복귀 시한이 다가오는 만큼 실제 복귀 움직임은 다음 주부터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서울권 의대 교수는 “수업 거부를 이어가는지 여부를 떠나 일단 등록은 할 것”이라며 “안 하는 학생이 소수일 것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등록 이후에도 상당수가 수업을 거부하는 ‘수업 불참’ 시나리오다. 정부는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할 경우 내년도 의대 정원을 늘려 다시 5058명으로 하겠다고 못 박은 상황이다. 이에 대학들은 학장 이름으로 직접 서신을 발송하고 1대 1 지도교수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중앙대 의대가 전날 개최한 학장 간담회에는 약 150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권 한 대학 총장은 “(휴학계 반려 역시) 제적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복귀해서 수업을 듣자는 게 핵심”이라며 “일부만이라도 돌아오면 수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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