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예고했던 대선 출마 선언날을 하루 앞두고 12일 전격적 불출마 선언을 했다. 앞서 오 시장 측은 시정 트레이드마크였던 '약자동행' 정책을 상징하는 곳에서 출마를 선언하겠다고 지난 9일 밝히며 대권 의사를 드러내왔다. 사흘 만에 입장이 바뀐 데에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과 최근 당내에서 일고 있는 ‘한덕수 추대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성장이다’ 출간에 대선 출마 예고
오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대선 비전을 담은 ‘다시 성장이다’를 편 데 이어 오는 13일 대선 출마 선언식을 예고해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이었다. 자신의 저서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려 조기 대선 행보"라며 "대선 비전 전략서"라고 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만큼 출간과 동시에 1쇄 물량 3만부가 완판됐다. 지난 9일에는 이번 주말 대선 출마 선언을 공지하며 김병민 정무부시장과 이종현 민생소통특보, 박찬구 정무특보, 이지현 비전전략특보 등 서울시 정무직들이 사임서를 내기도 했다.
오 시장 측은 12일 오전 언론 공지를 통해 두 시간 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고, 오 시장은 제21대 대선 불출마를 밝혔다. 그는 "정치인에게 추진력은 물론 중요한 덕목이지만, 멈춰야 할 때는 멈추는 용기도 필요하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백의종군으로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탄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 당 누구도 윤석열 정부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에서 커지는 ‘한덕수 대망론’
오 시장의 불출마 배경에는 국민의힘에서 분출되고 있는 ‘한덕수 차출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 50여명은 오는 13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촉구’ 회견을 추진 중이었다. 오 시장 측 핵심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덕수 대세론’이 불출마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당이 철저한 반성과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이날 한 대행의 출마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분은 본인의 의지와 결단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한 대행 스스로의 결단·의지로 임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 당이 대선 국면에 진입해서 너도나도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나서는 분위기가 과연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라며 "지난 일주일간 당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깊은 아쉬움과 염려를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토허제 헛발질’에 민주당이 불붙이는 ‘명태균 의혹’
지난달 토지거래허가제 정책을 번복한 것도 오 시장의 신뢰도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오 시장은 34일 만에 토허제 해제 결정을 뒤집고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까지 확대 지정했다. 오 시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결국 조기 대선 전초전부터 부동산 정책 실패 비판을 안고 가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세훈·홍준표 등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들을 겨냥해 명태균 의혹을 밀어붙이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윤덕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6일 "내란 참여자들을 처벌해야 다시는 헌정질서에 도전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명태균 특검법을 따박따박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관련 의혹을 철저히 부인해왔지만 지난달 검찰에 서울시장 공관과 시청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 당하며 부정적 인식을 주게 됐다.
이재명은 지지율 37% 치솟는데 오세훈 2% 그쳐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이 8∼10일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1일 발표한 여론조사(무선전화 면접 100%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37%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3%포인트 오른 수치로,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직후인 지난해 12월 3주 차 조사와 같고, 2022년 대선 이후 갤럽 기준 가장 높았다.
반면 국민의힘 주자 지지율을 다 합해도 이 전 대표에 미치지 못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9%, 홍준표 대구시장 5%,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4%를 보였고,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각각 2%를 기록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조사 결과에 처음 이름을 올렸는데 2%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1차 경선에서 100%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4명 압축키로 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오 시장의 1차 컷오프 통과가 확실치 않은 모습이다.
국민의힘 경선 구도 출렁…吳 지지율 흡수 후보 주목
오 시장의 불출마로 내주 본격 시작되는 경선에서 그의 지지율을 어떤 후보가 흡수할지 관심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오 시장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중도층을 향한 소구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오 시장은 이날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통령직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저의 비전과 함께해주시는 후보는 마음을 다해 도와서 정권 재창출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당내 주자들 사이에선 "'성장'과 더불어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건 오 시장의 소명 의식에 적극 동의"(김문수) "'다시 성장이다'와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화두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향후 국정 운영에 반영"(홍준표),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가치는 당의 재건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가치"(안철수) “오 시장님과는 서울의 오늘, 그리고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많은 고민과 비전을 나눠와”(나경원) 등 오 시장을 향한 러브콜이 빗발쳤다. 오 시장과 함께 중도 확장성 후보로 꼽혀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이 수혜를 받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 전 대표에게 반감을 가진 중도층이 전략적 선택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吳,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시장 임기
대선을 떨쳐 낸 오 시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서울시장 자리를 지키게 됐다. 4월로 예정됐던 서울 지하철 요금 인상과 상반기 중으로 거론됐던 한강버스 운항, 법정 싸움 중인 남산 곤돌라 등 현안 해결에 몰두할 전망이다. 오 시장은 이날 회견에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약자 동행의 가치를 완수하기 위한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며 “늘 그래왔듯 수도 서울을 반석과 같이 지키며 번영을 이룸과 동시에 시민의 일상을 챙기고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 약자의 삶을 보듬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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