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미국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미가) 서로 시너지를 얻게 되는 ‘빅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것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합당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리더십 경쟁이 제조업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미일 3국 협력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최 회장은 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포럼’에서 특파원단과 만나 “(한국 경제가) 단순히 수출 상품을 갖고 먹고살 수는 없는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접근해야 한다. 그런 빅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대한민국도 변화의 속도에 맞춰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관계를 비용과 편익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무역을 하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호 투자 및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 이를 통해 떼레야 뗄 수 없는 경제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대한상의는 한미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6개를 미국 측에 제시했다. △조선 △에너지 △원자력 △AI 및 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이다. 최 회장은 ‘미국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보였나’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며 “서로 좋은 이야기를 준비해왔고 6개 분야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 회장은 이번 방미 성과에 대해 “당초 계획했던 성과를 꽤 거뒀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첫 접촉이고,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듣고 소통을 시작하고 가능하면 그들이 흥미로워할 이야기를 한다는 게 계획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앞서 대한상의는 최 회장 등이 트럼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이 지난 8년간 1600억 달러 이상을 미국 제조업에 투자했다”며 “8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상당수가 연봉 10만 달러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2기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 최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도 인센티브가 있어야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세금을 내리겠다고 했는데 아직은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전임 정부가 한국 업체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 지급하기로 했던 보조금 집행을 트럼프 정부가 재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도 최 회장은 낙관론을 폈다. 최 회장은 “(미국) 정계 인사 중 한 명이 그것은 계속 집행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반도체법이) 미국에 좋은 것인데 왜 그걸 안 하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조건 준다’ 혹은 ‘무조건 안 준다’는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지를 묻자 “미국이 논머니터리(non-monetary) 관세도 관세라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 이야기는 다음번 한국 정부가 와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최 회장은 21일과 22일 양일간 열린 TPD 포럼에서도 한미일 산업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개회사와 특별 연설을 통해 “제조, AI, 에너지, 조선 및 해운, 원자력 등에서 한미일이 힘을 모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AI 활용이 금융과 서비스 영역에 집중돼 있지만 앞으로 리더십 경쟁은 제조 AI 분야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 분야에서 한미일 3국 협력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국 제조업의 최첨단 생산 설비와 미국의 소프트웨어, 일본의 소재 및 장비 기술 등 강점을 결합하자”고 제안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에너지 수출을 위한 인프라와 물류를 지원하고 반대로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협업과 원자력 및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에서 미국의 원천 기술과 지식재산(IP)을 한국과 일본의 설계·조달·건설(EPC) 능력과 조합하는 방안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행사에는 토드 영(공화·인디애나), 댄 설리번(공화·알래스카), 앤디 김(민주·뉴저지) 상원의원,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고노 다로 전 일본 외무상, 야마다 시게오 주미일본대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국민의힘 김건·최형두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과 위성락 의원 등 여야 의원이 참석했다. 조현동 주미대사,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강경화·박진 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고려대 교수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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