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희 전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일주일 만에 이뤄진 이번 수시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는 리더십 공백을 해소하고 빠르게 조직을 안정화해 ‘초격차’ 복원에 집중한다는 포석이다. 디자인 총괄에는 첫 외국인 사장을 영입해 혁신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1일 단행한 수시 인사에서 ‘조직 안정’에 무게를 뒀다. 한 전 부회장이 맡던 DX부문장은 TV·냉장고 등 가전 기기와 스마트폰, 노트북, 의료기기, 네트워크 장비 등 방대한 사업분야의 최종 결정을 수시로 하는 자리다. 소비자 요구와 중국 업체 약진에 대응하려면 오래 빈자리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노태문 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빠르게 전환했다는 분석이다.
노 사장은 MX사업부에서 ‘갤럭시 신화’를 일군 주역으로 꼽힌다. 또 삼성전자가 지향하는 ‘혁신적인 신제품’ 발굴에 가장 가까이 선 인물로 평가된다. 노 사장은 폴더블폰, 프로젝트 무한 등 새로운 폼팩터(유형)의 정보통신(IT) 기기 개발을 주도하며 시장 패러다임을 바꿨다.
가전은 모바일에 비해 유통 경로가 복잡하고 다수의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다. 이 때문에 모바일 수장이 가전을 총괄한 사례가 없었다. 그럼에도 노 사장에게 세트(완제품) 총괄이라는 중책을 맡긴 배경에는 그의 혁신 역량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노 사장이 한 전 부회장에 이어 대표이사까지 맡을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대표 선임은 이번 인사와 별개”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겸 부회장 1인 대표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노 사장이 DX부문장과 MX사업부장을 겸하면서 업무량이 증가한 부분을 MX사업부 최고운영책임자(COO) 신설로 보완했다. 지난달 사장으로 전격 승진한 최원준 삼성전자 MX사업부 COO는 세계 최대 모바일용 칩 기업인 퀄컴 출신이다. 그는 삼성전자 입사 후 MX사업부 차세대제품 개발팀장과 전략제품 개발팀장을 역임하며 갤럭시 시리즈 성공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는 사업부 운영을 총괄하면서 노 사장을 보좌하게 된다.
한 전 부회장이 겸했던 생활가전(DA) 사업부장에는 영업·마케팅 전문가인 김철기 부사장을 발탁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중 가전 상품군 출시 계획을 확정하고 4월부터 판매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때문에 DA사업부장에 꼭 사장급을 채우기보다는 현장에 능한 부사장급을 기용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김 부사장은 가전과 TV·스마트폰을 두루 거친 사내 대표적 영업·마케팅 베테랑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풍부한 인사이트와 시장 경험을 통해 DA사업의 새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부사장이 맡았던 MX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에는 조성혁 구주 총괄(부사장)이 선임됐다.
삼성전자는 리더십 공백 해소를 위한 수시 인사와 별개로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치니를 DX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사장)로 영입했다. 외국인을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포르치니 사장은 필립스 제품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3M과 펩시코에서 CDO를 역임했다.
포르치니 사장 영입은 삼성전자의 혁신 의지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 와야 한다”며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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