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에도 본격적으로 임원들에게 주는 성과급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성과조건부주식(RS)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005930)가 지난달 임원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자사주로 주는 제도를 발표한 데 이어 SK하이닉스(000660)에선 임원 124명이 83억 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책임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주가 부양도 노린다는 구상이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임원 124명이 지난달 24일 초과이익분배금(PS) 명목으로 자사주 3만 7580주를 수령했다. 지급일 기준 주가(22만 1000원)를 기준으로 83억 518만 원 규모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구성원들이 PS의 최소 10%에서 최대 50%까지 자사주로 받을 수 있는 주주참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PS는 1년에 한 번 연봉의 최대 50%(기본급 1000%)까지 지급하는 인센티브다. 자사주를 1년 보유하면 매입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하는 조건도 포함됐다. 다만 반도체 다운턴 영향으로 PS 없이 위로금만 지급했던 지난해에는 해당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
올해 자사주를 가장 많이 수령한 임원은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CDO) 사장으로 1574주를 받았다. 안 사장의 보유주식은 4407주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950주를 받아 총 5570주의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김주선 AI인프라(CMO) 사장,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CTO) 부사장, 김영식 양산총괄(CPO) 부사장 등 C레벨 임원들도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임원을 대상으로 약정 시점에 회사가 주식을 지급하는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보상(RSA)'을 도입하기로 했다. 임원들은 성과급(OPI)의 50% 이상을 자사주로 선택해야 한다. 비율 조건은 상무는 성과급의 50% 이상, 부사장은 70% 이상, 사장은 80% 이상, 등기임원은 100%다.
의무보유 기간도 있다. 부사장 이하는 지급일로부터 1년간, 사장단은 2년간 각각 지급받은 주식을 매도할 수 없도록 했다. 중장기 성과를 독려하는 것과 동시에 책임경영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주가 하락 시 자사주 지급량까지 줄이는 파급적인 제도도 포함됐다. 가령 1년 뒤 주가가 약정 당시보다 10% 하락할 경우 약정 때 10주를 주기로 했다면 10% 적은 9주만 지급되는 식이다. 영업이익 등 경영 실적뿐 아니라 주가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DB하이텍(000990)도 지난달 작년 한 해 실적에 따른 '생산성 격려금(PI)'으로 연봉의 15%를 책정하면서 PI의 최대 50%까지 자사주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DB하이텍이 자사주 옵션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임원 성과급을 회사 주식으로 지급하기로 한 데 대해 "선진국형 보상체제로 가는 첫걸음마를 뗐다"며 "그동안 지적됐던 주주, 이사회, 임직원 사이 얼라인먼트(alignment·정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단추라고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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